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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형통할 때, 시편이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진짜 공의와 사랑

seanj-kim 2025. 6. 16. 07:51

 

 

 

하나님, 왜 악인의 형통을 지켜만 보고 계시나요? 이 세상의 불공평함에 마음이 무너질 때, 시편 10-17편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무엇인지 따뜻하고도 단단하게 알려줍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답답한 소식에 한숨이 절로 나올 때가 많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은 힘겹게 버티는데, 온갖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 같아 보일 때요.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 걸까? 왜 이런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두실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어요. 마치 다윗이 시편에서 절규하듯, 제 마음도 하나님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죠. 바로 그런 마음으로 시편 10편부터 17편까지를 펼쳐보았습니다. 😊

 

악인의 번성과 의인의 탄식 😥

시편 10편은 정말 제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어요. 시인은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고 부르짖습니다. 악인들은 교만해서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말하죠.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거죠.

이것은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니에요.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부조리함, 억울함 속에서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외침입니다. 시편은 이런 우리의 솔직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쏟아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흔들리는 세상 속, 피난처이신 하나님 🙏

그런데 놀랍게도 시편 11편에서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주변 사람들은 "네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하지만, 다윗은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세상은 우리에게 더 안전해 보이는 곳, 더 높아 보이는 곳으로 피하라고 속삭이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야말로 진정한 피난처임을 고백하는 것이죠.

💡 알아두세요!
성경에서 말하는 '피난처'는 단순히 물리적인 위험을 피하는 장소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해요.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이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시편 16편에서 다윗의 고백은 절정에 이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그는 이 땅의 것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자신의 기업(유산)으로 삼았어요. 그렇기에 그는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사랑의 공의: 나를 지키시고 연단하시는 눈길 ✨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 실현될까요? 시편 17편은 그 답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단순히 악인을 심판하는 차가운 저울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를 가장 소중한 눈동자처럼 지키고 보호하시는 사랑의 눈길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물론 그 과정에는 연단이 있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라고 고백해요.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이 연단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되죠.

구분 악인의 길 의인의 길
삶의 방식 교만, 속임수, 폭력 (시 10:2-4) 정직,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음 (시 11:1, 17:3)
궁극적 만족 이 세상의 재물과 자손 (시 17:14) 주께서 깨실 때 주의 형상으로 만족 (시 17:15)
⚠️ 주의하세요!
눈에 보이는 형통함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당장의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과 의인을 향한 영원한 계획을 바라보라고 격려합니다.
💡

시편 10-17편 핵심 묵상

탄식과 질문: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하나님, 어디 계세요?"라고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믿음의 과정입니다.
믿음의 선택: 흔들릴 때에도 우리의 피난처는 세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뿐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랑의 공의: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마음을 연단하시며, 결국 당신의 얼굴을 뵙는 만족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최종 소망:
나의 만족은 이 땅이 아닌, 주를 뵙는 것 (시 17:15)

자주 묻는 질문 ❓

Q: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면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시편 기자처럼 그 마음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토로하는 것이 중요해요. 동시에, 그들의 일시적인 형통이 아닌 영원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때와 공의를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Q: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A: 문제로부터 도망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하심을 믿고,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분 안에 안전하게 머무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위입니다.
Q: 시편 17편의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는 무슨 뜻인가요?
A: 이 세상의 부나 명예, 성공 같은 일시적인 것들로는 채워질 수 없는 영혼의 만족을 의미해요.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마주하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뵐 때,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궁극적인 소망의 고백입니다.

시편 10편부터 17편까지의 여정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의심과 탄식으로 시작했더라도, 그 모든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결국 그분의 변치 않는 사랑과 완전한 공의를 신뢰하게 된다는 것을요. 여러분의 삶에도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나요? 오늘, 그 질문을 가지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나아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